칼럼 연재글
[석하스님의 카이스트 수행기] 다이나믹하고 다사다난했던 일주일간의 네팔여행①
도연(석하스님)
2015. 4. 9. 17:19

▲ 네팔 치트완(국립공원)에서 네팔친구들과 아침산책 중 [사진=석하스님]
예전에 메모해 둔 일기를 뒤적여 보니, 네팔에 여행갔을 때 적어 두었던 내용들이 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네팔여행’인데, 그당시 써둔 일기 덕분에 그때의 상황을 보다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일기를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일기를 써야한다는 애기를 주변과 여러 가르침에서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중요한 경험이다 싶으면 기록에 남긴다. 그런데, 일기를 쓰는 스타일이 사람들 마다 조금 다른 것 같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기를 쓰는 경우도 있고, 그때 그때 생각날때 마다 기록에 남기는 경우도 있으며 그것도 아니면 아예 안쓰거나, 이 두가지를 동시에 쓰는 경우가 있다. 나는 지금 그때 그때 기록에 남기는 스타일 있지만, 더 나아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기를 쓰는 습관도 한번 길러봐야겠다.
2013년 가을, 학과수업으로 한창 바쁠시기에 네팔에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이유인 즉, 외교부 산하의 국제구호 봉사단체 ‘에이트참밍’의 강흥수 사무총장님께서 네팔 현지에 가야할 일이 생기신 것이다. 네팔 현지에 에이트참밍지부가 있는데, 젖소농장을 만들어서 자생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사무총장님께서는 영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서 혼자 다녀오기 어려웠고, 누군가 한명 같이 일주일 이상 네팔을 같이 다녀오면 안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하니까 데려가도 쓸모가 없을것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극구 데려가시겠다는 사무총장님의 결연한 의지와 부탁으로 결국 일주일간의 네팔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그동안 결석을 한 수업들이 더러 있었는데, 더 이상 결석을 하게되면 결석초과로 F학점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각 과목 교수님들에게 이러저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졸업학점을 지키기 위한 방어전술을 구사하고 나서야 네팔일정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10월 14일 월요일 밤, 인천공항에서 타이항공 비행기를 타고 태국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비행기 시설도 좋고 기내식이나 서비스도 좋았다. 타이항공이 태국의 국왕이 세운 재단에서 운영한다고 하던데, 태국 왕실에 대한 이미지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라고 느꼈다. 나도 태국에 대한 이미지가 전보다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강흥수 사무총장님은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많이 피곤하셨는지 깊은 잠에 드셨다.
나도 피곤했지만 잠을 자는게 아깝다고 여겼고, 앞으로 네팔에서 있을 이런 저런 상상을 하고 지나온 날들도 돌이켜 보면서 느긋하게 보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본적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설레는 맘으로 내 좌석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와 이어폰, 리모콘으로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5~6시간 정도 지나니 방콕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의 낭만과 여유는 잠시였고, 지금부터가 고생 시작이었다.
방콕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였으며 마땅히 잘데가 없었다. 저가 항공을 탄지라 태국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 좀 춥고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쉬었는데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하자 새벽 5~6시 경에 따뜻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태국에 도착한지 9시간이 지난 후인 오전 10시경에 네팔행 비행기를 타고 출발 하였으며 오후 1시정도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 네팔 카트만두공항 출입국 상황. [사진=석하스님]
카트만두 공항의 첫인상은 방콕에서의 그것고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잘 만들어진 방콕의 현대식 공항과 60~70년대의 한국을 보는듯 한 광경으로도 경제력의 차이를가늠할 수 있었다. 허름한 공항을 보니 네팔의 경제수준이 어느정도 짐작이 되었다. 그렇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참 많았고, 입국심사를 받고 여행비자를 받기 위한 줄이 참 길었다. 1시간 가량 기다리면서 우리나라의 출입국과 비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행정력은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세계 1위라고 한다. 미국도 따라오지 못하는 한국인의 힘! 이것은 IT기술이 발달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빨리빨리 진행해야 하는 한국민의 민족성 때문에 속전속결의 행정력이 나온것 같다. 어찌보면 민첩한 민족성이 오늘날 한국을 IT강국으로 만든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날 한국으로 입국할 때 인천공항의 이미그레이션(Immigration, 출입국)데스크에서 줄서서 대기한 후에 여권보여주고 통과되는 시간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느끼게 된 대목이다.

▲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서 우리를 환영나온 크리슈나와 함께 [사진=석하스님]
비자를 발급받고 밖으로 나오니 에이트참밍 네팔센터장 크리슈나와 그의 친구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꽃 목걸이를 걸어주면서 환영해 주었는데, 이것이 그 나라의 전통 환영방식 이라 한다. 여기서부터 네팔 에이트참밍센터까지 차로 이동하면서 주변 거리를 살펴보니 사람들이길거리에 즐비해 있었다. 알고보니 네팔에는 1년 동안 우리나라의 설날과 추석과 같은 명절이 4~5차례 있는데 각 명절마다 20일 이상 휴일을 보내는데, 그들의 삶의 형태가 한국에서 느꼈던 것과 많이 달라서 한편으로는 이질감을 느겼다. 우리나라는 휴일도 자주 있지 않고, 휴일기간 이라 하더라도 그중에 며칠은 일을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성실하고 네팔인은 게으른 것인가? 네팔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국민성 자체가 게으른것은 아닌데, 각 집마다 외국으로 나가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꼭 한두명 씩은 있었다. 가까운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가는 경우도 있고, 한국이나 일본 더 나아가 미국이나 두바이까지 가서 몇년간 해외용역을 하면서 급여를 본국으로 송금해주거나 저축해서 가지고 오면 오랫동안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정도가 된다고 한다.
옛날부터 네팔의 축제는 있어 왔고,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와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시스템도 있어왔다고 한다. 무엇이 먼저 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들만의 삶의 방식은 오랜세월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써 이해를 하게되었다.
우리도 살아가다보면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던 사람도 나중에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처해진 상황과 이어져 내려온 맥락을 살펴보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상대방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깊게 생각하는 힘도 없거니와 자기 자신의 문제에 빠져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볼 여유와 틈이 없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외교도 마찬가지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관계도 매한가지이다. 상대방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생각한다면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서로의 관계도 더 좋아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출가사문 / 카이스트 기술경영학 전공
서울시 위탁형 대안학교 ‘숲속작은학교’ 교육·행정
외교부산하 비영리법인 에이트참밍 총무부장
[권수진 기자 jhyoon22@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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