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하스님의 카이스트 수행기] 다이나믹하고 다사다난했던 일주일 간의 네팔여행②

네팔 시내를 지나가다 보니 유명한 관광지 근처에 KFC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매장이 많은지 물어보니, 네팔 전국을 통틀어 KFC는 여기 한 군데만 있다고 하고, 이마저도 외국 관광객의 수요로 인해 생긴 시설이라고 한다. 네팔에서는 코카콜라나 마운틴듀와 같은 음료수들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가격은 1달러 정도 되었다. 외국제품들이 그 나라에서와 동일한 가격으로 책정되니 네팔사람들이 느끼는 물가의 수준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이 되니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졌는데, 저녁 8시밖에 안 됐는데도 집안은 불이 꺼져 있고, 대부분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10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든다고 하는데, 일찍 자는 만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농사를 짓거나 등교한다고 한다.
밤거리 길가에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간격이 멀고 빛이 약해서 어둡게 느껴졌다. 또한, 24시 편의점이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외국에 여행을 왔으니 밤에 야식도 먹으면서 사람들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해서 참으로 아쉬웠다. 오늘날 생긴 야식과 배달의 문화는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있을까? 야식이 과하면 좋지 않은데, 가끔 누군가와 함께 기분을 내면서 야식타임을 갖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우리는 야식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게 문 닫기 전에 내일 아침에 먹을 우유와 바나나 등을 사두었다.
에이트참밍 카트만두 센터에 도착하니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친분 있던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스마트폰을 가져갔는데, 다행히 여긴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자주 끊기고 인터넷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못 쓰니 원시인이 되는 것 같았지만, 속세와 단절된 듯하여 기분은 좋았다. 빠르고 편리한 것을 주로 찾고 누리는 세상에서 잠시 세속을 떠나 여행 오는 뿌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점심으로 카레와 스프를 먹고 나서 근처에 있다는 큰 절에 갔다. 가깝다는 얘기만 믿고 갔다가 된통 당했다. 여기서는 1시간 걸어가는 것도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나가면서 그네를 타는 아이들도 보고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전통시장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근처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SUTPA’라는 절에 도착했다. 도심에 이런 큰 사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굉장히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울 도심에 있는 조계사나 봉은사보다 더 컸던 것 같다. 불상 같아 보이는 대형 건축물이 중앙에 높게 솟아 있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또한, 법회가 진행 중이었는데 티벳불교의 스님들이 독경하고 음악을 연주했다. 저음으로 내는 독경 소리로 듣기엔 괜찮았다.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는데, 기도하고 있는 스님이 있어서 인사하고 나를 한국 스님이라고 소개하자 더 반갑게 맞아주었으며 함께한 사진도 남겼다.

충분히 감상하고 사진도 남긴 후에 네팔 스님과도 한 컷 찍었다. 센터에 돌아와서 또 식사를 했는데, 네팔 사람들은 참 많이 먹는다. 그래서 대체로 배가 나온 것 같다. 식사량이 우리의 2~3배는 되는 것 같았다. 점성과 물기가 별로 없는 푸석푸석한 밥을 어떻게 저리도 잘 먹는지 한참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게다가 거의 끼니때마다 카레가 나온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카레는 질리도록 많이 먹었다. 좀 씻고 쉬다가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피곤했고 지친 상태였지만, 한국적인 명상을 가르쳐주면서 하루를 정돈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치트완(Chitwan)이라는 대도시로 이동했다. 카트만두에서 치톤으로 이동하는 길은 너무 좋지 않았다. 고속도로 같은 도로인데, 중앙선이 없어서 위험천만했으며 바로 옆에는 절벽과 강이 흐르는 곳이었다. 마치 강원도의 좁은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경치만큼은 정말 좋았다. 이곳은 최근 급성장하는 도시로써 카우팜(젖소농장)을 세울 곳인데, 국가에서 카우팜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어 농장운영에 대해 다소 안심이 되었다.
네팔은 거의 집집마다 젖소를 한두 마리씩 기르고 있었다. 네팔 사람들은 우유를 매일 마시는데, 오래전부터 젖소를 어머니와 같이 고마운 존재로 신성시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법적으로 젖소를 도축하고 소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얼마 전 외국인이 네팔에서 소고기를 먹었다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어 크게 곤란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먹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법적으로 금지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은데, 네팔의 경우를 보니 종교와 문화의 힘이 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 새삼 놀랐다.
이렇듯 네팔에서는 오랫동안 각 집집마다 우유 생산을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값싼 우유가 들어오면서 우유를 마트에서 사 먹기 시작했는데, 많은 물량이 들어오다 보니 네팔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수입해온 우유만큼 인도로 나가는 달러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자국의 우유 생산을 늘리고 상품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우유 하나로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도 참 생소하게 다가왔다. 아직은 네팔이 농업 중심의 사회라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옛날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경제력은 뒤떨어지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적으로는 높은 성장을 이루었지만, 자살과 우울증으로 대두하는 인간소외 현상은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경제력과 행복지수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네팔은 경제력은 낮지만 행복해 보였다. 시골에서 서로 농사를 지으며 상부상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가족을 대표해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는 사례도 아주 많았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면 6·25전쟁 이후 국가가 발전하면서 한 집안의 가장이 겪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주요 테마이다. 그 영화에서도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국가를 위해 독일에 가서 광부와 간호사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먹고 살기는 힘들어도 삭막하지 않았던 과거의 우리나라와 현재 네팔이랑 겹쳐지면서 다소 쓸쓸한 기분을 느꼈다.
원문읽기: http://www.news2day.co.kr/n_news/news/view.html?no=66140

출가사문 / 카이스트 기술경영학 전공
서울시 위탁형 대안학교 ‘숲속작은학교’ 교육·행정
외교부산하 비영리법인 에이트참밍 총무부장